내가 만든 주제로 연구하기
“내가 만든 주제로 연구하기”
나만의 문제는 찰나에 스쳐 지나간다. 무언가 스쳐 지나갔음을 감각적으로 인지하고 그것을 잡아내는 것이 나의 연구 주제를 찾는 방법이다. 첫 연구 이후로는 스스로 문제를 잡아 왔었는데, 매번 이와 같은 방법으로 나만의 문제를 만들어 왔다. 예를 들어, 매일 보던 예제에서 어느날 문득 느껴지는 위화감으로부터 시작하기도 하고 [1].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른 호기심과 오기로부터 시작하기도 하고 [2], 타 연구실과의 미팅에서 들은 이야기로부터 영감을 얻어 갑자기 시작하기도 했었다 [3].
개인적으로 남이 만든 문제를 연구하는 것보다 내가 만든 문제로 연구해 볼 것을 추천한다. 이를 추천하는 이유는 큰 장점이 여럿 있기 때문인데, 그중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연구에 대한 모성애가 생긴다. 내 지도교수님은 항상 “연애하듯이 연구해야 한다.“라고 지도를 하셨었다. 항상 연구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연구를 대했었던 감정은 연애보다는 모성애에 더 가깝다. 이 두 가지의 감정에는 큰 차이가 있다. 연애하듯이 하는 연구는 열정적으로 진행할 수는 있겠지만, 연구가 길어지거나 잘 안될 때 쉽게 흔들리고 포기하게 된다. 반면 모성애를 가지고 하는 연구는 생사를 함께 한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게 되고, 이는 연구 과정 동안 마주치는 수많은 고난을 버텨낼 수 있게 해준다. 예를 들어, 연구가 잘 안 풀리거나 연구 결과를 인정해 주지 않으면 “이거 아직도 하고 있냐, 빨리 해서 치워라”, “이 정도 했으면 손절하고 다른 연구 해라”와 같은 말을 듣게 될 것이다 (실제로 들었던 말들이다). 내가 위와 같은 상황을 버티고 끝까지 연구를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만든 문제에 대한 모성애(“내가 만든 주제를 이렇게 마무리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가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리스크가 낮다. 내가 만든 문제를 연구하는 것이 남이 만든 문제를 연구하는 것보다 오히려 리스크가 낮다. 남이 만든 문제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연구를 해왔거나 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치열한 경쟁을 피할 수 없다. 빠르게 결과를 내어 논문을 쓰지 않으면 다른 연구실이 먼저 결과를 내어 내 연구가 무의미해질 수도 있다. 시간에 쫓기며 급하게 하는 연구가 제대로 되기도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반면, 내가 만든 문제는 accept 되기 전까지는 지구에서 나만 하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위와 같은 리스크가 없다. 내 연구 중에는 3년씩 걸려서 마무리했었던 연구들도 있었는데, 경쟁자가 없었기 때문에 accept 되기 전까지 아카이브에 올리지도 않았었다.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을 때의 리턴이 매우 크다. 성공적으로 연구를 마무리했다면, 문제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는 만드는 것이 푸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 문제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연구자로서의 가치를 크게 높여준다. 문제 만들기는 경험을 통해 크게 훈련된다. 한 번 문제를 만들어서 연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면, 향상된 경험과 감각으로 다음에는 더 쉽게 문제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 또한, 새로 만들어낸 문제들은 앞의 성공적인 업적들로 인해 더욱더 대우받을 것이다. 의심하던 사람들이 응원하는 사람들로 바뀌게 된다. 만들어 놓은 문제를 나누어 줄 수도 있다. 대학원 초년 차에 가장 걱정하는 것중 하나가 연구 주제를 잡는 것이다. 연구 주제에 대한 걱정으로 밤을 지새우는 후배들에게 내가 만든 문제를 나누어 주어 크게 도울 수 있다. 문제를 멋지게 마무리하고 즐거워하는 후배들을 보는 것도 내가 한 연구만큼이나 큰 보람이다.
마무리
가능하다면, 내가 만든 문제로 연구를 하길 바란다. 이 글에서 소개하는 것 이상으로 큰 장점이 많다. 연구 전후로 다른 사람이 되어있을 것이다.
참조
[1] Minseok Jeon, Sehun Jeong, and Hakjoo Oh. 2018. Precise and scalable points-to analysis via data-driven context tunneling. Proc. ACM Program. Lang. 2, OOPSLA, Article 140 (November 2018), 29 pages. https://doi.org/10.1145/3276510
[2] Minseok Jeon and Hakjoo Oh. 2022. Return of CFA: call-site sensitivity can be superior to object sensitivity even for object-oriented programs. Proc. ACM Program. Lang. 6, POPL, Article 58 (January 2022), 29 pages. https://doi.org/10.1145/3498720
[3] Minseok Jeon, Jihyeok Park, and Hakjoo Oh. 2024. PL4XGL: A Programming Language Approach to Explainable Graph Learning. Proc. ACM Program. Lang. 8, PLDI, Article 234 (June 2024), 26 pages. https://doi.org/10.1145/3656464